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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자산과 도시재생 : 대구의 한옥자산과 그 가능성

[ 웹진 6호 ]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1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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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한옥자산

지난 2012년부터 2013년까지 대구광역시 내에 존재하고 있는 한옥에 대한 전수조사가 이루어졌다. 모든 가옥의 형태를 실측하는 수준으로 진행된 것은 아니었지만, 현존 한옥의 수량조차 파악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지역별 수량, 정확한 위치, 건축연대, 현존 건축물의 수준 등급, 평면 유형, 지붕 형식, 건축 재료 등 개략적인 건축정보를 공간정보지도로 작성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성과라 하겠다. 실로 광역지방자치단체 단위의 한옥정보가 일차적으로 완성된 것은 대구가 처음이다. 이러한 기초 데이터를 바탕으로 대구광역시의 한옥 지원사업이 개시되었고, 지원사업의 진행에도 당시의 전수조사가 주요한 판단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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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기준 대구의 한옥현황>

출처 : 국가한옥센터, 「전국단위 한옥조사를 위한 현장조사 및 DB구축」 2013

 


 그 과정에서 대구광역시 권역에는 적어도 11,000동 이상의 한옥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고, 실제로는 이 숫자를 상회하는 한옥이 대구의 숨겨진 풍경을 형성하고 있다. 이정도의 밀도는 다른 어느 지역에서도 볼 수 없는 수준이다. 지역적으로는 중구와 더불어 서구, 남구에서 중구와 접한 지역에 한옥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었으며, 달성군에서는 수량은 많으나 밀도가 낮은 분포 양상을 보였다. 시기적으로는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한옥건설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평면 유형은 一자형과 ㄱ자형이 양분하고 있었고, 시멘트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이 주종을 이루었다. 특별히 한식 서까래를 쓰지 않고 각재로 경량식 목조지붕을 구성한 사례가 많은 것이 주목되었는데, 이는 근현대기 대구 한옥의 특징이라 이를만한 흥미로운 아이디어였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한옥이 구체적인 기록도 없이 멸실되고 있다는 점이다. 소위 불량노후주택지를 개량하거나 도로를 넓히기 위해, 혹은 아파트단지를 건설하기 위해 수십동씩의 한옥이 사라지고 있다. 이는 비단 잔존 한옥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오래된 지역 건축자산에 해당되는 문제이다. 특히 대구의 소중한 근대기 건축자산이 1990년대를 지나면서 궤멸적으로 철거된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실책이다. 도시가 생물과 같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존재라고 이해할 때 이러한 현상은 일견 당연하기도 하다. 과거의 흔적을 위해 현재와 미래를 일방적으로 저당 잡힐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러한 멸실 과정을 거치면서 대구는 어떤 도시로 변모해가고 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이 만들어내는 도시의 가치

우리는 어떤 도시에 살고 싶은 것일까? 개개인의 욕망은 내 집의 부동산 가치가 단기간에 오르는 것에 초점이 있다. 하지만 도시적 삶의 가치는 이보다 복잡하다. 나의 도시라고 감히 부를 수 있는 것은 주민등록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기억 때문이다. 일상적으로 걷던 길이나 아버지와 나와 아이가 다니던 학교, 익숙한 풍경의 시내에서 수십 년째 드나드는 단골집, 첫 키스의 골목 같은 것들이야말로 ‘나의 도시’를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거기에는 항상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쌓이면서 나의 기억은 다른 누군가의 기억과 중첩된다. 가볍게 눈으로 읽히는 도시가 아니라 함께 경험으로 이해하고 있는 도시야말로 진정한 도시가 아닐까. 개념적으로는 집단의 기억이라 할 만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도시는 공간으로 읽히는 대상이지만, 도시의 진정한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시간이다. 굳이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물리적인 공간보다는 시간의 가치를 선택하는 편이 옳다. 시간의 가치는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번 잃은 시간의 가치는 쉽게 회복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과거 어느 시점의 시간이 박제화 되어 존재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도시를 민속촌으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래된 형태라고 해서 그 자체로 집단 기억의 의미를 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자리에 그렇게 오랜 시간을 서 있음으로 해서, 그래서 시민들 개개인의 기억 속에 진득한 누적을 만들어낼 때만이 도시의 가치 있는 풍경이 된다. 그 기억의 경험은 세대마다 다른 대상에 투영되어 있다. 그렇게 보면 진정 필요한 것은 시간의 단순한 두께가 아니라 많은 시간의 켜가 중첩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켜가 촘촘할수록 도시 공간은 가치 있어질 것이고, 나의 도시라는 감각도, 찾아오는 외지인에게 주는 감동도 깊어진다.

멸실되고 있는 한옥들은 그저 노후한 불량주택이 아니라 어느 시간의 켜를 담고 있는 형상화된 존재이다. 이들 한옥을 무턱대고 보존할 일은 아니지만, 해치워야할 불량건축물로만 바라보는 시선은 거두어들이는 것이 옳다. 적어도 건물의 철거로 잃을 계량되지 않는 무형의 것에 대해 진지하게 가치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건축적 자산에는 스스로의 사회적 재생산을 위한 다양한 가치 창출의 모델이 그 속에 존재하여야 한다. 그리고 모자라는 동력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적절한 지원을 마련해두는 것이 도시 전체의 성장을 위해 필요하다.

 

도시의 미래를 위한 느린 걸음

최근 북성로를 중심으로 하는 흥미로운 실험이 반갑다. 근대건축물 리노베이션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3년째 진행 중인 이 실험은 다른 시도에서처럼 구역을 정해 일관된 디자인의 도시경관을 조성하는 재생 사업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시민이 참여주체로 계획을 제출하고, 관청은 리노베이션을 통해 만들어질 가치의 가능성을 판단하여 4,000만원 선에서 공사비를 지원하며, 지역의 전문가들이 결합하여 사업의 취지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언한다. 그렇기에 대단히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사업일 수밖에 없지만, 대신 사업 대상 건물은 각각 원래의 특징적인 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리노베이션 되는 장점이 있다. 하나의 시간의 켜를 모델로 통일된 경관을 만들기보다는 서로 다른 설계자가 각각의 구조법과 재료를 사업 참여자의 예산 범위와 활용 계획 내에서 완성해낸다. 그래서 불과 3년간의 사업이지만 이를 통해 조성되어가는 도시의 경관은 촘촘한 다층의 시간을 드러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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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노베이션 사업으로 정비된 북내동 19-4번지 애가 한옥게스트하우스>

출처 : 애가 한옥게스트하우스 (aegahanok.modoo.at)

 


 도시를 숫자로 읽어내는 것은 편리하지만 위험하다. 지역자산을 통한 도시재생은 그래서 보다 세밀한 관심을 필요로 한다. 여전히 시민들의 도시와 건축에 대한 감수성을 폭넓게 투영하고 있는 한옥은 아마도 꽤 요긴한 자산이 될 것이다. 도시재생은 급박한 뜀박질이 아니라 느리지만 오래 걷고자 하는 태도에서 완성된다.

 

 


경북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조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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