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진20호 ]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17-10-31
뮌스터는 유럽 교역로의 한 가운데 위치한 독일의 중소도시로 영국과의 목재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경제적 요지가 되었습니다. 30년 전쟁(1618∼1648) 때는 중립 지대가 되어 강화 회담(1645∼1648)이 열렸고, 그 결과 이곳에서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1815년에 이르러서는 프로이센에 속한 베스트팔렌주(州)의 주도(州都)가 되었습니다.
독일의 여느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광범위하게 파괴되었으나, 1335년 건립된 고딕식 공회당, 1225∼1265년 건립된 대성당 등 대부분의 역사적인 건축물이 복구되거나 재건되었습니다. 또한 뮌스터에는 공립 대학인 베스트팔렌 빌헬름 대학교가 있고 ‘대학 도시’라 불릴 정도로 많은 대학생들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술대학이 유명합니다.
‘조각 프로젝트’의 시작
이탈리아의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의 카셀 도큐멘타와 함께 지금은 유럽 3대 예술 행사로 꼽히는 독일 뮌스터의 ‘조각 프로젝트’는 역설적이게도 뮌스터 시민들의 현대 미술에 대한 거부감에서 시작했습니다. 1977년에 클라우스 부스만에 의해 처음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뮌스턴 주민들이 영국 모더니즘의 거장인 헨리 무어의 작품을 공공장소에 전시하는 것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이자 이곳 주민들에게 현대 미술에 대한 이해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파리의 에펠탑 또한 처음 지어질 당시에는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는 게 떠오릅니다.
도시와 프로젝트
뮌스터를 방문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느낀 것은 도시와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관람’한다고 표현하지 않고 ‘참여’한다고 한 이유는 지도와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직접 도시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작품들을 찾아 나서야 했었기 때문입니다. 조각품을 미술관에 전시하는 것에서 벗어나 도시 전역에 설치한다는 발상도 독특했지만 10년을 주기로 설치 작품을 도시의 일부분으로 축적해 나가는 것이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시민들 가까이에 머무른 미술품들은 도시의 일부분이 되어있었습니다. 실제로 작품이 설치된 마을의 주민들조차 그 오브제가 전시 작품인지 오래 전부터 있던 것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었을 정도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광주 건축 비엔날레를 관람하러 가서 뮌스터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와 비슷하게 도심에 흩어져있는 어반 폴리(Urban Folly)를 찾으러 다닌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 지하철역 위로 설치된 피터 아이젠만의 작품이 어느 가게의 간판을 가리고 있다는 이유로 철거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몹시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 뮌스터 조각프로젝트 시작의 동기부여가 된 헨리무어의 조각품>
조각품을 가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대형 트레일러도 사실은 작품의 일부이다.
마치 무어의 조각이 트레일러 위에 실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Benz Bonin Burr
2017, Skulptur Projekte 2017
Material
Low-loader, wooden crate, safety ropes
Cosima von Bonin + Tom Burr
* 1962 Mombasa, lives in Köln
* 1963 New Haven, lives in New York
이처럼 독일 뮌스터는 우리로 하여금 도시 디자인을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갈 것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도시입니다. 1970년대에 시작된 이 조각 프로젝트는 4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도시를 살아 숨 쉬게 하고 있습니다.
대구 창의 도시재생 글로벌 기자단(D-UrbanFD). 김 민 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