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진 5호 ]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16-07-22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란, 낙후된 지역의 상권이 활성화됨에 따라 임대료가 상승하게 되고 기존에 있던 세입자나 주민들이 내몰리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대구 지역에서는 중구 대봉동의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과 최근 각종 리노베이션 사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북성로까지 이러한 현상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7월19일, 방천시장 및 김광석 다시그리기길 프로젝트의 예술감독을 맡으신 ‘손영복’ 작가님의 작업실을 찾아가 인터뷰해 보았습니다.
A : 젠트리피케이션을 우리나라 말로 하자면 ‘둥지 내몰림 현상’이라고 합니다. 소규모 자본이 대형 자본에 밀려나는 대표적인 현상인데, 피해자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분명 좋게만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이것을 안정화 시키는 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해외 어느나라에도 다 존재하지만 우리나라와 그 정도가 다 다릅니다. 세입자가 들어와 내 권리를 찾을 수 있기까지의 기간 같은 것들의 차이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대구 동성로만 나가 보아도 짧은 기간 동안 건물이나 가게들이 계속해서 바뀌곤 하는데 일본만 보더라도 수십, 수백년 된 가게들이 많이 존재합니다. 사람들이 이런 곳들을 보기위해서 일부로도 많이 찾아 가곤 하는데 이런 것들이 참 부러워요. 세입자와 건물주인 간의 관계문제 같은 것들이 자리를 잡고 안정권에 들려면 구조적인 법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해외의 선진 사례를 많이 참고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현상을 제도나 법을 통해서 개선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이전에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것이라도 꾸준히 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어야 이 현상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A : 기존에 방천시장 안쪽에서 작업실을 사용하다가 2010년 김광석 길을 계획하고 만들어지면서 운이 좋게 김광석 길 중간에 추가로 공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김광석 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모니터링 해야 할 일도 많았고, 인터뷰 요청 등 찾아오시는 분들도 많았었는데 기존 작업실은 너무 지저분하고 험해서 사무실처럼 사용할 커뮤니티 공간이 필요 했었죠. 카페까지는 아니고 지금처럼 오시는 분들게 이렇게 커피 한 잔씩 내려 드리는 그런 공간으로 사용한 겁니다.
북성로로 이사한지는 1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옮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먼지나 소음이 많이 나는 조각 작업을 할 수 있는 공장 같은 큰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방천시장과 김광석 길 일대는 기능이나 형태가 많이 변화하고 그 중간에서 저와 같은 예술가들이 작업하기에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또 북성로는 공구나 재료 수급이 상당히 용이한 곳이라 호시탐탐 옮길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곳입니다. 어쩌면 언론에서 기대하는‘쫓겨나거나 내몰린’그런 상황만은 아니였고, 나갈 시기가 되어서 자연스럽게 옮기게 된 것입니다.
A : Bok Art 는 저만의 작업 공간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분들과도 공동작업을 하는 공간입니다. 제 이름 끝자리를 따서‘복 아트’라고 지은 것이고, 북성로는 앞서 말씀 드렸듯이 위치나 재료수급 등 여러모로 작업 환경이 좋아서 오게 된 것입니다. 그 전에 있던 방천시장과 비교를 하자면 형태나 규모에서부터 다르지요. 방천시장은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쇠퇴하던 시장에서 그곳에 다른 것으로 채워지는 형태였다면 이곳 북성로는 규모도 더 크고 이미 오래전부터 안정권에 있는 곳이에요.
A : 당시 재래시장을 전통시장이라는 명칭을 쓰고 전국적으로 예술가들이 그곳에 들어가 시장을 활성화 시키는 프로그램들이 많았습니다. 방천시장은 아주 낡아서 사람들 왕래도 적고 시장 기능도 거의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대구 미술평론가 협회에서 중구청에‘낡은 시장의 문이 닫힌 수많은 폐공간들을 미술가들이 들어가 공방이나 작업공간으로 꾸며서 쓰고 활동하면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지 않을까.’먼저 제안하여 ‘별의별 별시장’이라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도 참여작가로 들어가 방천시장에서 계속 활동하였고, 이 프로젝트의 반응이 좋아서 다음해 말에 보다 큰 규모의‘문전성시’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됩니다.‘문화를 이용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이라는 조합어로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 사진 등 분야를 확장시켜서 많은 예술가들이 들어와 시장을 더욱 활성화 시키는 프로젝트였어요.
당시 지금의‘김광석 길’은 그냥 골목길, 지나다닐 수 있는 기능만 하는 길이었죠. 지나다니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고 벽도 무척 낡은 옹벽이었습니다. 낡은 벽에 그림을 그려 넣자는 이야기가 계속 있다가‘이야기가 있는 벽’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몇 년간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해온‘인디053’전문 문화기획자 이창훈 대표와 문득 김광석 길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을 했었죠. 여러 대화를 나누던 중 이창훈 대표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고 그 다음 회의 때 함께 김광석 길 프로젝트를 제안을 했습니다. 시장 상인분들 뿐만 아니라 회의 참석자분들 중 관에서도 김광석이라는 사람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계셨지만, 저희가 맡아서 해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직접 설득을 했죠.
김광석씨는 인근 봉덕시장 쪽에서 태어나셨는데, 당시에는 지금 위치한 김광석 길의 대봉동도 봉덕동에 포함되었습니다. 이 골목길의 크기 같은 것도 김광석 추모길을 만들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고 그 때만 해도 주변에 현대식 건물이 없어서 근대 느낌도 나고 전반적인 분위기가 정서적으로도 맞았던 것 같아 시작하게 된거죠. 당시에는 지금처럼 이렇게까지 이슈가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고 지금 이 길의 형태나 기능이 처음 저희의 취지와는 조금 다른 상업적인 방향으로 흘러온 것 같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A : 서로의 입장에서 각자 아쉬움들이 있겠지만, 제 입장에서는 역할분담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아쉬웠어요. 사업진행 과정 중에서는 역할 분담이 잘 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봤을 때 이런 현상(젠트리피케이션)을 예상하고 막지 못한 것 같다는 점에서 결국 미흡한 부분도 있었고 역할분담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 길의 예술감독으로 다른 예술가들을 초대하고‘김광석’이라는 사람의 이미지를 어떻게 시각화 시킬지, 어떤 그림을 그려 넣고 이 길의 맥락을 어떻게 풀어갈지 고민하는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대구에 이런 길이 만들어 졌으면 왜 만들어졌고 왜 필요한 것인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각 분야별로 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이 길의 맥락과 맞지 않는 대형 프렌차이즈점들이 들어선 것도 모자라 최근에 사격장까지 생긴 것을 보고 조금 당혹스러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식당 등에서도 ‘김광석’이라는 이름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 문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고민을 하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등 잘 운영해야 하는 사람들이 수천, 수만명의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그런 이슈적인 상황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아닌지 조금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참여 예술가들에 대한 ‘인정’! 대구의 젊은 작가들이 공동으로 만든 하나의 창작품으로 인정해달라는 것인데 그런 것들이 없는 것 같아요.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작가들이 쫓겨나거나 내몰린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에 상심을 하고 스스로 떠난 경우들도 있어요. 당시 예술감독이였던 저와 작가들이 김광석 길에 관해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벽화를 그려놓은 것인데, 예를 들어 이곳에 오시는 분들에게‘이 길은 누가 만들었을까요?’물어본다면 대부분‘대구시나 대구 중구청’이렇게 아시고 대답하시지 않을까요? 이곳뿐만 아니라 어떤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컨텐츠를 만들고 직접 참여한 예술가들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아쉬운 점들로 남습니다.
A : 소위 말하는‘뜨고 있는’지역이라면 어디든 가능성이 없지 않겠지만 글쎄요. 여러 전문가분들은 이곳 북성로를 충분히 그렇게 될 것 이라고 보시는데요. 최근 상당히 이슈가 되고 있는 곳이고 저도 절대 아니다, 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방천시장과 김광석 길처럼 급속도로 그런 현상이 일어나진 않을 것 같습니다. 북성로는 방천시장, 김광석 길과는 다르게 원래 장사하시는 분들이 거의 대다수이시고, 또 장사하시는 분들이 건물주인 경우가 많은 곳이기 때문에 방천시장이나 김광석 길 만큼 그런 현상이 우려 되는 곳은 아닌 것 같습니다.
A : 수년전부터 전국적으로 ‘벽화길’,‘벽화마을’들이 생겨나고 이곳들이 명소화 되면서 어김없이 이런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 기간상으로 봤을 때 가장 급변한 곳은 아마 이곳(김광석 길)이라 생각하고 이렇게까지 이슈가 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기에 그 변화의 속도는 따라갈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기준삼아 앞으로 더 잘 해나가야겠죠. 초반에도 말씀 드렸듯이 각자의 역할에서 고민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고, 또 참여자들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물론 시장이나 마을에 살고 계시는 주민들 같은 경우에는 상인들이나 그 원주민들이 가장 대접을 받아야 하겠지요.
김광석 길은 제 또래의 몇몇 예술가들이 풀어가고 감당해나갈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대구 미술계도 마찬가지이고 어느 분야에서도 감당을 하지 않으려는 것 같습니다. 미술계에서는 벽화라는 것이 평가가 저하되는 경향도 있고 인정받지 못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김광석 길의 회복과정이라던가 역사성을 기록하고 공론화 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있어야 되는데 저 길을 대표할 만한 책 한 권 없는 실정입니다. 미술계뿐만 아니라 관광, 경제, 사회분야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같이 움직여줘야 합니다. 현재 중구청에서 주도하고 관리하고 있지만‘김광석 길 과’라고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제한된 직원들로 관리하기에는 관에서도 힘이 들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대구의 보배 같은 곳이라 여기며 보다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 주시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분들께서 함께 움직여 주셨으면 합니다. 주변 환경이나 역사성 등을 연결하면 더 무궁무진한 작업들이 가능할 것이고, 도시재생의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