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진18호 ]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17-08-29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런던의 테이트 모던, 뉴욕의 소호 거리, 베이징의 798예술구……. 이곳들을 아시나요? 세계 여러 나라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이곳들은 모두 유휴공간의 쓸모를 살린 도시재생이 이루어진 곳입니다. 오르세 미술관은 원래 노후화되어 사용하지 않는 기차역이었고, 테이트 모던은 버려진 화력 발전소였고, 소호는 쇠락한 공장과 창고 지대였으며, 베이징 798예술구는 무기 공장지대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과거에 ‘유휴공간’이었습니다. 유휴공간이란 유휴(遊休)와 공간(空間)의 합성어로, 사용되지 않는 혹은 쓰지 않고 가만히 놀리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이는 폐(閉)공간, 버려진 공간과는 다릅니다. 폐공간이 물리적인 복구를 통해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반면, 유휴공간은 용도의 변경 또는 새로운 기능의 부여를 통해 재사용되는 공간을 가리킵니다.
유휴공간은 발생 이유와 발생 장소 그리고 그 범위에 따라 다양하게 구분됩니다. 이 가운데 발전소나 공장, 탄광과 같은 상업 시설들은 시대적 상황에 의해 그 기능을 상실한 곳입니다. 산업 기반 사회에서 정보 중심 사회로 이동하면서 많은 산업 시설들이 문을 닫게 되면서 도시에는 많은 유휴공간이 생겨났습니다. 이처럼 본래의 쓸모를 상실한 유휴공간은 점차 낙후되어 흉물로 인식되고 주변 지역의 슬럼화를 조장하는 등 여러 가지 문제를 낳았습니다.
이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최근 ‘문화’를 활용한 도시재생이 활발합니다. 소외되고 낙후된 공간에 우리의 문화와 예술의 숨결을 불어넣음으로써 사람들의 발걸음이 다시 그곳으로 자연스레 이어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살아난 공간은 마치 생명을 가진 유기체처럼 활기를 띠며 이웃한 지역까지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문화의 힘은 이처럼 강력합니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 가운데 대표적으로 문화를 활용한 도시재생이 이루어진 곳이 바로 중국 베이징의 ‘798예술구’입니다.
중국 베이징 798예술구
출처 : ⓒ798예술구 공식 홈페이지
‘베이징의 소호’로 불리는 798예술구는 1970년대 베이징의 근대화를 이끌면서 구소련과 동독의 지원 아래 대대적으로 건설된 무기 공장지대였습니다. 그 면적만 약 60만㎡에 달하지만, 과거 이곳은 그 용도가 무엇인지를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건물의 이름 대신 700, 806, 707, 741, 798과 같은 번호로 불렸습니다. 그 마지막 남은 공장의 일련번호가 798로, 오늘의 ‘베이징 798예술구’라는 명칭은 여기에서 유래합니다. 1978년의 개혁 개방과 현대화의 물결, 정보화 사회로의 이동 등으로 빈 공장이 늘기 시작했고 이곳 공장지대 역시 도시의 흉물로 방치되었습니다. 그러다 1990년대에 어느 교수가 방치된 공장 한 곳을 임대하여 작업실로 사용하면서 예술가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빈 공장 터의 낮은 임대료와 넓은 공간에 매력을 느낀 예술가들이 이곳에 몰려들면서 작업실, 화랑, 상점, 사무실, 식당 등으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특히 2003년 ‘새로운 798 건설’이라는 커다란 행사를 치르고 난 뒤, 중국 베이징의 798예술구는 비로소 전세계가 주목하는 명소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현재 이곳에는 270여 개의 화랑과 스튜디오가 있으며, 3만 평 규모에 달하는 문화 산업의 요지가 되었습니다. 건축물들은 바우하우스 시대의 디자인으로 설계되었고, 창이 많아 밝고 기능적으로 효율적인 데다 건축미 또한 뛰어나 예술가들의 아틀리에로 쓰이기에 너무나 이상적인 장소입니다. 과거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건축물과 현대적으로 개조된 실내의 모습이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냉전 시대의 무기 공장이라는 어두운 과거에 현대 중국인들의 감수성과 예술적 아이디어를 접목시켰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폐공장과 현대예술의 감수성
출처 : ⓒ위키피디아
낡은 건물, 회색 시멘트 벽과 현대미술의 어울림은 798예술구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공장의 차갑고 무거운 이미지와, 다소 경직되어 보이는 사회주의국가 중국의 이미지에 더해 현대적 예술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억압과 통제 아래 자유롭지 못했던 중국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폐공장 건물에서, 오늘날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예술 작품들, 특히 중국 고유의 색채를 사용한 다양하고 파격적인 작품들을 자유롭게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 이곳의 가장 커다란 매력입니다.
현대미술과 공공성
낡은 공장이 예술과 문화의 공간으로 탈바꿈한 798예술구는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더욱이 오늘날 생활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아짐에 따라 예술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예술에 대한 이러한 대중들의 관심은 유휴공간에 활력을 불어넣는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곳 798예술구에서도 누구나 전시된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소통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예술거리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조성하기에 앞서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폐공장을 문화적인 공간으로 되살렸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있습니다.
공간의 쓸모를 찾다
베이징 798예술구의 사례를 통해서 경제성과 효율성만을 추구했던 급속한 도시화, 산업화 시대의 낡은 유산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볼 때입니다. 베이징 시민들은 가치를 상실한 폐공장을 활용해 문화 공간을 창조함으로써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했습니다. 이 공간은 문화와 예술이 넘나드는 장으로서, 지역 공동체에도 사회적·경제적으로도 기여합니다. 우리도 최근에 이러한 유휴공간이 지니는 가치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도 낡은 산업 시설에 예술·문화를 덧입혀 새로운 쓸모를 찾아줄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러한 고민이 대구 지역의 활성화와 문화기반시설 구축, 도시의 정체성 확립으로 이어지길 진심으로 기대해 봅니다.
<참고자료>
1. 798예술구 공식 홈페이지
2. 신희경, 『부산 감천문화마을 사례로 본 실천적 문화교육 방안 연구: 중국 베이징 798예술구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경성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15
3. 곽수정, 『유휴공간의 문화공간화를 위한 콘텐츠 연구』, 국민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07
4. 조현욱, 『도시노후지역의 유휴공간 활용을 통한 도시재생』, 건국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17
5.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985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