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서촌의 범위>출처 : 학위논문, 지역의 시대별 정체성과 구성요소로서의 지역문화콘텐츠 연구 경복궁의 서쪽마을 서촌은 조선시대부터 관아 시설을 비롯하여 역관, 의관 등 관리들의 주거지와 민가, 그리고 양반들의 별서지가 밀집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 둘레로는 북악산, 인왕산이 자리하고 있어 산수가 유려하고, 효자로, 창의문길, 자하문로가 위치해 접근이 용이합니다. 따라서 시대적 변화에 따라 여러 계층의 인구가 빈번하게 이곳을 오갔고, 이를 계기로 오늘날 도시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풍부한 역사적 자원들이 생겨났습니다. 조선 초, 빈 땅이 많았던 서촌에 왕족들의 주거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도성내의 급격한 인구증가로 인해 서촌에는 왕족 이외의 계층들도 유입되어 주거 유형이 다양해집니다. 18세기에 이르러서는 문인과 화가들이 모여 이곳에서 조선의 문학과 회화를 선도했습니다. 서촌에 모여든 예술인들은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 훗날 조선 고유의 예술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는 전통적 이념과는 무관한 일본인의 의도에 따라 서촌에 큰 변화가 일게 됩니다. 격자형의 계획형 가로망이 도시 전반의 경관을 바꾸어 놓았고, 그 과정에서 명소들이 훼손되거나 사라졌습니다. 친일파들이 서촌으로 몰려들어 지역의 원주민들이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광복 뒤에는 급격한 인구의 증가로 주거 밀도가 높아지면서 전체적인 주거환경이 낙후되었습니다. 식민지 경험이 끼친 부정적 영향으로 서촌의 고유한 지역 정체성의 상실이 우려될 무렵, 근대 예술인들의 작업실과 주거지가 다시금 이곳에 생겨났습니다. 소설가 이상, 시인 윤동주, 화가 박노수, 이상범 등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 서촌의 정체성은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됩니다.오늘날의 서촌 마을 <박노수미술관과 새로이 생겨난 작업실>출처 : 직접촬영서촌은 서울 도심에 위치하면서도 옛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마을입니다. 지리적으로는 경복궁의 서문 영추문에서 인왕산 사이에 자리하고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 청운효자동, 통인동, 체부동, 옥인동 일대를 서촌마을이라 부릅니다. 주로 전문직 중인들의 거주지였으나 인구 이동 또한 잦았던 탓에 서촌에서는 오늘날 여러 계층의 주거 문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인왕산 자락에 권문세가들이 별장을 지어 풍류를 즐겼던 조선 시대의 영향이 남아, 서촌은 근대 시기까지도 여전히 우리의 문화 예술의 맥을 이어온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때문에 서촌에는 지역 문화 콘텐츠로 발전시킬만한 유형적, 무형적 문화 자산이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골목길의 형태를 중심으로 660여 채의 한옥과 재래시장, 근대문화유산들이 그것들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2000년대에 이르러 서울시는 도시마케팅 정책을 통해 사회적, 문화적, 공간적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그 결과 구도심 서촌 특유의 오래된 마을이 갖는 조용한 분위기를 시민들이 여러 방법으로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서촌은 서울을 대표하는 새로운 관광 명소가 되어 많은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중입니다. 서촌의 문화적 정체성<서촌일대 소규모 갤러리의 전시>출처 : 직접촬영 서촌에 남겨진 공간들은 건축가, 학예사, 디자이너, 영화제작사, 출판업자와 같은 창의적 유형의 직업군들과 만나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했습니다. 오래된 건물들은 거주 또는 작업의 용도로 바뀌어 시민들과 함께하는 소규모 갤러리와 공방, 소규모 상점 등으로 재생되었습니다. 창의적인 직업인들과 지역민들, 그리고 관광객이 공존하는 서촌마을은 고유의 독특한 문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지역의 문화는 그것을 즐기는 시민들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듭니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문화는 지역을 찾는 사람들을 통해 지역 내에서 소비되는 까닭에, 이러한 생산과 소비가 활발해질 수록 지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더해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증진시키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서촌은 이제 기존에 존재하던 유형적 문화 콘텐츠에 무형적 문화 콘텐츠를 더해 새로운 지역 문화 콘텐츠를 확립하면서, 서촌만의 독특한 지역 정체성을 구현하고자 합니다.통의동 보안여관과 대림미술관 특히 서촌은 예로부터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였던 까닭에, 이를 기반으로 소통하고 교류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띱니다. 경제적 이윤 추구보다는 지역 공동체에 기여한다는 의식을 가진 이들이 다양한 행사나 지역을 소개하는 프로젝트 등을 만들기도 합니다. 통의동 보안여관과 대림미술관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통의동 보안여관의 전시>출처 : 직접촬영 1930년대에 문을 연 통의동 보안여관은 그 자체가 통의동의 역사입니다. 이곳은 수많은 문인들의 거주지가 되어 문학작품을 탄생시킨 배경이 되었습니다. 1936년 서정주, 김동리, 오장환, 김달진과 같은 시인들이 모여 한국 현대 문학의 기반을 닦았습니다. 이곳에서는 플리마켓, 전시, 공연, 강연과 같은 다양한 행사를 개최합니다. 광복 뒤에도 보안여관은 역시 예술가들의 터전이 되었고, 군사독재 시절에는 청와대 직원들이 주로 사용하여 ‘청와대 기숙사’라 불리기도 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여관으로서의 가치를 다한 보안여관은 2006년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했습니다. 보안여관의 부활은 공간 그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가 되는 창의적인 재생방법을 보여줍니다. <대림미술관의 전시>출처 : 직접촬영 한편 대림미술관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현대미술에 접근하는 작업을 행하고 있습니다. 대림미술관이 2002년도에 서촌에 들어서면서 갤러리들이 하나둘 이곳으로 모여들게 되었습니다. 대림미술관은 전시와 공연, 교육,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서촌을 새롭게 조명합니다. 미술관은 그 자체의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크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술관 밖에서 이루어지는 기획 프로그램들이 마을 공동체와 함께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지역 정체성을 구체화하고 그것에 바탕하여 다채로운 문화콘텐츠를 창조하는 것 또한 하나의 지역 재생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서촌은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참고자료>1. 채수진, 「지역의 시대별 정체성과 구성요소로서의 지역문화콘텐츠 연구」, 건국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132. 네이버 지식백과, 「서촌마을, 경복궁 서쪽 동네가 들려주는 이야기」, 대한민국구석구석 여행이야기 2013
웹진12호 ㅣ 도시재생사례 ㅣ
17-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