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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살리는 건축, 망치는 건축

[ 웹진12호 ]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17-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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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이 책의 저자인 이경훈 교수가 <못된 건축>을 쓰기 전에 출간한 책입니다.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라는 책을 출판한 후의 반응은 대단했습니다. 긍정과 부정, 찬사와 응원 그리고 질책과 비난이 엇갈렸지만, 이경훈 교수는 이 또한 성과라고 여기고 도시에 대한 생각을 담은 그의 두 번째 책을 출간합니다. 이경훈 교수는 ‘못된 건축’을 영어로 ‘Civically Incorrect Building’이라 씁니다. 글자 그대로 그는 ‘도시적으로 잘못된 건물들’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못된 건축’에서도 그는 ‘못된 건축이 도시를 해친다.’, ‘도시를 혐오하게 되는 주범’등 공격적인 표현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그가 세상에 ‘나쁜 건축’, ‘가치 없는 건축’은 없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못된 건축’이 도시를 망친다고 주장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서문에서 이경훈 교수는 파리 여행에서의 기억을 떠올립니다. 그는 파리에서 평범하지만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 근처의 교차로에서 정장 차림의 한 신사가 차도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빨간 신호등에서 멈춰서서 교통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파리의 자전거와 오토바이는 차도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면서, 인도 위를 걷거나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들을 배려하면서 바퀴에 대한 자존심을 지키고 있었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바퀴의 자존심은 사뭇 다릅니다. 심지어 자동차조차 그 자존심을 지키지 못하고 인도를 침범하여 거리를 걸어가는 시민들을, 더 나아가 도시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점들이 발생한 원인과 동시에 그 해결책도 바로 건축물의 태도에 있다고 말합니다.

‘못된 건축’에서는 열 한 개의 실제 건축물의 예(트윈트리타워, 서울역, 남대문, 서린빌딩, 고급호텔, 대형 쇼핑몰, ECC, 아파트와 땅콩집, 예술의 전당, 옥상정원, DDP)를 통해 도시를 바라봅니다. 이 중에서 도시와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여겨지는 몇 가지의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서울역
 세계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서울에는 기차역이 있습니다. 도시에서 역은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고 특히 서울역은 서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기차역은 산업혁명 이후 항구나 공항보다도 보편적으로 발달한 교통의 중심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기차역은 도시로 입장하는 관문의 역할을 하며, 도시의 첫인상을 결정합니다. 중세도시의 성문과 같은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계 유명 도시들의 기차역에서 이러한 중요한 요소들을 고려하여 기차역을 짓고, 그 건물을 디자인한 사례들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쾰른중앙역 앞에는 거대한 쾰른 대성당이 여행객들을 맞이하고 있고, 베를린 중앙역 앞에는 넓은 광장이, 베네치아 산타루치아역 앞에는 아름다운 풍경이 도시를 찾는 이들을 압도합니다.

 서울역도 마찬가지로 서울이라는 도시, 혹은 한국의 첫인상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서울역에는 당연히 이에 부응하는 건축적 고려가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서울역은 그렇지 못합니다. 지하철역에서 나오자마자 옆구리에 붙어 있는 통로를 따라 들어가야 합니다. 또한 저자는 서울역의 작디 작은 위용에 비해 바로 옆에 들어서 있는 화려한 쇼핑몰은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어서, 마치 쇼핑몰 옆의 좁은 문으로 서울역에 입장하게 되는 듯한 모습을 비판합니다. 기차역 내의 상업공간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상업공간과 기차역이 함께 시너지효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대구역이나 서울역의 경우에서와 같이 ‘기차역 내의 상업공간’이 아닌 ‘백화점의 일부인 기차역’이 된다는 것은 분명히 도시적 구조와 맥락에 혼란을 가져오는 디자인입니다.

​숭례문
 2008년 2월 10일 화재로 인해 숭례문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재난 영화와 같은 장면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보 1호를 지키지 못한 점, 관리를 잘 하지 못한 점, 일부가 소실된 것이 아니라 목조의 대부분이 내려앉을 때까지 화재를 진압하지 못한 점 등은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더 반성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숭례문에 대한 주변 건물들의 태도입니다. “대한민국의 자부심, 숭례문! 우리 모두의 정성과 사랑으로 다시 일어서기를 기원합니다.” 숭례문을 잃고 난 뒤 숭례문과 이웃한 고층 빌딩에 내걸렸던 문구입니다. ‘일어서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숭례문을 의인화하였고 문구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샀습니다. 그러나 그 건물의 숭례문에 대한 도시적 태도는 이와 딴판입니다. 숭례문이 실제로 살아 있었다면 더욱 섭섭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파리의 개선문과 비교하면 숭례문과 이웃하고 있는 건축물들의 태도가 얼마나 ‘못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물론 파리는 계획된 도시이기 때문에 서울과 출발점부터 다르지만 이후 건축된 건축물들과 파리시에서 지정한 법규들을 살펴보면 개선문에 대한 아주 겸손하고 희생적인 태도가 엿보입니다. 제 몸을 낮추기도 하고 찌그러지기도 하고 물러서기도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광장은 도시의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자산이기도 하지만 그 혜택은 또한 광장 주면의 건물들에게 돌아갑니다. 그러한 노력 덕분에 광장 앞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숭례문은 현재 인근에서 가장 키가 작은 건축물입니다. 주변 건물들의 방향과 배치들도 제각각이어서 배려와 희생은커녕 오히려 숭례문을 잡아먹기라도 할 것처럼 보입니다. 숭례문은 우리 곁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도시를 디자인하면서 우리의 국보 제1호가 도시의 문화적 전통을 상징하는 자랑스러운 건축물로 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대형 쇼핑몰
 저자는 이 챕터의 부제를 ‘거리를 집어삼키는 진공청소기’라고 달았습니다. 대형 쇼핑몰과 대형 아파트 단지 등은 대부분 미국에서부터 들여온 것입니다. 이제 한국에서 대형 쇼핑몰과 대형 아파트 단지는 쇼핑과 주거의 기본 형태가 되었지만, 미국의 대형 쇼핑몰은 우리의 경우와는 제법 다르게 형성되어 있고 심지어 대형 아파트 단지는 실패의 사례로 유명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형태들이 성공하게 된 요인은 이들 건축물의 입지입니다. 미국의 대형 쇼핑몰은 교외에 있습니다. 쇼핑몰보다 더 큰 면적의 주차장이 딸려 있어 도시에서 차를 몰고 오는 고객들을 수용합니다. 적어도 도시 내에 위치한 소박한 상점들을 품고 있는 거리들을 해칠 일은 없습니다. 이에 비해 한국의 대형 쇼핑몰은 최대한 도심에 위치하고, 지하철과 바로 연결되기도 하는 독특한 형태입니다. 도심 한복판에 주변의 건물들보다 훨씬 큰 규모의 건물을 세웁니다. 사람들은 거리가 아닌 쇼핑몰 내에 들어와 쇼핑을 하고 저녁식사까지 마친 뒤에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물론 미국 대형 쇼핑몰의 형태도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저자는 쇼핑몰에 들어서면 영화 ‘트루면 쇼’의 주인공이 된다고 표현합니다. ‘트루먼 쇼’의 주인공은 태어날 때부터 세트장에서 살게 되며 그의 삶은 모두에게 생중계됩니다. 저자는 쇼핑몰이 이러한 세트장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쇼핑몰 안에 인위적으로 조성된 거리에서 쇼핑을 합니다. 쇼핑몰 내부에 나무를 심기도 하고, 심지어 마카오의 한 쇼핑몰 천장에는 하늘처럼 보이는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쇼핑몰에서 조성된 거리를 실제의 거리로 착각하다가, 결국 이것에 완벽히 속아 적응하게 됩니다. 이러한 쇼핑몰에 속아 도시 고유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거리를 더 이상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건축과 도시의 관계를 깊이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둘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도시재생에서도 건축은 여전히 커다란 수단입니다. 더 이상 건축물을 단순히 독립적인 미학적 대상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기존 도시 구조와의 연계성을 고려하여 커다란 도시적 맥락 속에서 건축물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합니다. 도시재생의 측면에서도 이러한 시야를 가지고 단순한 편의와 미관을 위한 재생이 아닌 ‘재생’이라는 말이 진정으로 잘 어울리는, 도시를 살리는 기획들이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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