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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안고 흐르는 아름다운 도시, 고베

[ 웹진 1호 ]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1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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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번의 기차 환승 끝에 고베 산노미야 역에 도착했다. 역 주변의 일대는 지진이라는 어감과는 다르게 길거리에 걸터앉아 있는 모든 것들이 저마다 사색하듯 고요하기만 하다.
  이제는 흘러버린 역사의 한 페이지 위에 존재하는 1995년의 그날, 도시를 습격한 지진은 상상 조차 할 수 없었던 광경 이였다. 고속도로가 찢기고 철도와 빌딩이 무너져 내렸던 곳을 걷자니 지금은 흘러가버린 삽 십 년 에 대한 침묵이 나를 에워쌌다. 

  대지진 후 공공시설의 복구와 함께 개인의 거처 확보를 위한 부흥 주택 계획이 공공기관에서 세워지고 있었다. 망가진 고베를 보고 깊은 무력감에 빠진 안도 타다오는 건축가로서 인간과 자연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실현시키기 시작한다. 그 지진 부흥 프로젝트는  효고현립미술관 , 고베시 수변광장, 이와지 유메부타이, 롯코 집합주택 1,2,3 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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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고현립미술관>
출처 : 본인촬영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듯 차들이 왕래하는 간선도로 다리를 건너자 저 멀리 묵직하고 웅장한 형상이 보인다. 효고현립미술관은 고베항을 바라보면서 반대로는 산을 등지고 있었다. 산과 바다를 품고 있는 그 위치만으로 이미 충분히 의미를 다하였다고 생각했다. 자연을 사랑하는 우아하고 고운 감성이 있는 한편 웅대하고 대담하게 세계에 맞서겠다는 결의가 느껴지는 건물이었다.           

  지진 직후 일본인들은 실의에 빠져있었다. 그 누구라도 대자연의 재앙 앞에서는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진 프로젝트가 실시되자 효고현민은 이 부흥 과정에서 일본인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인프라 복구에서부터 주거환경 재정비까지 인내와 창조력을 요구하는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어 10년이 채 안 되는 시간 안에 도시를 훌륭하게 되살린 것이다. 이 위업은 지금까지 역사상 유례없는 놀라운 도시재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극을 초석삼아 이루어낸 성공적인 도시 프로젝트는 맹목적으로 새것을 만들어내는 단순한 재개발 사업과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자연으로부터 상처받고서도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연에 대한 경외를 놓지 않았다. 강인하고 단단한 콘크리트가 바다와 산을 따뜻하게 품고 있는 효고현립미술관처럼 그들도 섬세하지만 대담한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고베의 건축물과 길거리에는 아픈 과거에 대한 극복과 현재에 대한 존중에 관한 속삭임들로 가득하다. 나는 각자의 사연으로 가득 찬 이 곳에서 두 번째 이야기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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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타노 거리의 저녁>
출처 : 본인촬영

  미술관에서 다리를 건너 언덕길을 지나 몇 번의 횡단보도를 통과하면 불현듯 이국적인 광경이 펼쳐진다. 키타노 거리는 메이지 시대 들어왔던 외국인들이 서양식 주택을 짓고 모여 살다 지금은 다양한 방식으로 개조된 건축물 들이 즐비한 곳이다. 안도 타다오의 초기 작품이 밀집되어 있기도 한데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건설 붐에 휩쓸려 무미건조한 아파트와 빌딩의 난립으로 유서 깊은 거리가 망가지자 도시정비작업이 실시되었다.

 

  안도 타다오는 10년 동안 8건의 건축에 관여하였고 건축주와 주민들의 열정에 힘입어 모든 주변 환경과의 자연스러운 조화의 정취를 꾀하여 키타노 거리를 현대적 감성과 유서 깊은 건물이 동거하는 거리로 재탄생시켰다. 주민들의 거리 살리기 의식으로 만들어진 거리를 걷다 보니 위기를 마주했을 때 발휘되는 고요하고도 강한 일본인들의 웅숭깊음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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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즈가든(1977) : 키타노에 있는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1호>
출처 : 본인촬영  

            

  지도가 없었다면 로즈가든을 보고도 어느 세련된 상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노출 콘크리트의  대명사인 안도 타다오의 상업 건물의 처녀작이 벽돌로 지어졌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는 거리의 고유의 이미지와 주변과의 조화를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전매특허인 콘크리트가 아닌 벽돌을 쌓았다. 그가 실현하고 싶었던 것은 단순한 건축적 재료의 완성을 항한 욕심이 아니라 벽 넘어 존재하는 공간의 정신성 이였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건물과 접할 때 창조자의 의식과 세계를 단편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건물과 거리의 조화에서 나오는 완결성은 거리에서 숨 쉬는 인간의 정신적 충족에 큰 역할을 한다. 건축가는 그것을 위해 자신의 방식을 포기했고 건축주는 경제성에만 종속된 사고 대신 거리의 정체성을 존중했다. 아픔을 이겨내고자 했던 그들은 모두 같은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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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고베>
출처 : 본인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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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 곳곳에 존재하는 그날의 아픔과 상처를 간직한 흔적을 발견할 때마다 마음이 처연해졌다. 지금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 거리 위에도 폭력의 잔재가 곳곳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아직도 고베 지진을 겪은 세대의 시간의 어느 한편은 여전히 1995년에 멈추어 있다. 나는 그 역사적 산물로 뒤엉킨 거리의 중심을 따라 시간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 어떤 건축물도 멈추어버린 그날의 시간을 되돌려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외부의 변화에 따라 여러 형태의 변모를 거친 건축물은 도시의 산증인으로 성장하여 그들 곁에 존재하며 치유의 손을 내밀며 공존하고 있다. 이 역사적 기념물은 함께 일구어낸 사람과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자연과 뒤섞인 채 함께 오늘도 흘러간다.  


임규향 / 자유기고가, LUV contemporary Art 갤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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