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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재활용의 미학

[ 웹진 9호 ]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16-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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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조'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세계적인 도시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는 그의 저서 『The Rise of the Creative Class』를 통해, 탈산업화를 지나 국제화, 정보화시대에 이른 오늘날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영역의 주요한 동력은 창조성이며, 국가 성장의 핵심요소는 창조계급이라고 말했습니다. 플로리다가 말하는 ‘창조계급’은 현대사회에서 창조적인 작업을 통해 경제적 이윤을 창출하는 과학자나 건축가, 디자이너, 작가, 예술가, 교수, 엔터테인먼트 종사자 등의 직업군에 속하며, 개성을 선호하고 실력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과거 산업화시대에 노동자들이 단순히 계획되어있는 일을 수행 했었다면, 탈산업 창조경제시대인 지금은 ‘창조계급’이 자율성과 융통성을 가지고 창조적인 혁신을 이루어내어 경제적 이윤을 창출하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플로리다가 강조한 ‘창조성’은 세계적인 인구변화 동향과 문화 및 기술혁신을 이끄는 21세기의 주요 지침이 되었고, 선진도시들은 저마다 창조경제, 창조도시를 이루기어내기 위해 노력해오고 있습니다.

 『The Creative City』의 저자 찰스 랜드리(Charles Landry)는 창조도시를 ‘독자적인 예술문화를 육성하고 새로운 산업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도시’라 정의했습니다. 창조도시는 산업사회 이후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지역의 자원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복원하려는 ‘도시재생’의 방법에 창의적인 상상력을 녹여내어 그 지역만의 고유한 문화 색을 입힌 결과물로 볼 수 있습니다. 탈산업화와 기후변화를 함께 겪으며 개발의 한계를 경험한 세계 각국은 창조도시를 위한 ‘공간재활용’의 방법으로 리사이클링(recycling)을 넘어선 업사이클링(upcycling)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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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레니엄브릿지에서 바라본 테이트 모던>
출처 : 중앙일보 「낡은 발전소 건물 ‘창조적 재활용’… 4500만명이 다녀갔다」 10.05.04. 

 

 

 현대미술의 중심을 뉴욕에서 런던으로 옮겨왔다고 평가받는 런던의 테이트모던뮤지엄(Tate Modern Museum)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업사이클링 공간입니다. 테이트모던은 2차 세계대전 직후 런던중심부에 전력을 공급하기위한 화력발전소였습니다. 공해문제로 1981년 문을 닫고 방치되어 있다가 영국정부와 테이트재단의 결정으로, 외관은 최대한 손대지 않고 내부를 미술관의 기능에 맞게 새로운 구조로 개조하여 2000년 5월12일 개관하였습니다. 7층으로 구성된 웅장한 테이트모던은 미술품들을 20세기 전체를 아우르는 네 가지 주제 풍경, 정물, 누드, 역사로 나누어 각각의 미술품들이 역사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변형되어 왔는지를 보여줍니다. 기존의 시대사조에 따른 전시방식과는 색다른 이러한 새로운 전시방식은 99m의 발전소 굴뚝이 주는 투박한 느낌만큼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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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세미술관과 센강>
출처 : 나무위키

 

 런던에 대영박물관과 테이트모던이 있다면, 문화와 예술의 도시 파리에는 루브르박물관과 오르세미술관이 있습니다. 오르세미술관 역시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를 계기로 개장한 오르세역이  1939년 문을 닫은 뒤 재활용된 공간입니다. 1986년 개관한 오르세미술관은 19~20세기로 이어지는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시기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으며, 반 고흐, 폴 고갱을 비롯한 인상주의 작품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 파리의 대표적인 미술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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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역서울284 >
출처 : 전성기News 「문화역서울 284에서 만나는 반 고흐의 일생」 16.01.28

서울역의 변화

 서울에서도 버려진 기차역을 예술공간으로 재활용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난 2011년 8월 개관한 ‘문화역서울284’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르네상스식 기차역으로, 그 당시 서울을 대표하는 ‘경성역’으로 불리다가 해방 이후 서울의 급격한 발전과 함께 2004년, 새로운 서울역이 탄생하면서 폐쇄되었습니다. 이후 (구)서울역은 2011년 원형 복원공사를 마치고 ‘문화역서울284’라는 이름으로 시민에게 개방된 역동적인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였습니다. ‘284’는 옛 서울역의 사적 번호를 붙인 것으로, 사적으로서 그 모습과 가치를 보존함과 동시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다양한 문화가 교차되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문화역서울284는 ‘문화역’으로서 대안적이고 실험적인 전시, 공연, 강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으며, 올해 상반기에는 오르세미술관을 연상케 하는 전시 “반 고흐 인사이드: 빛과 음악의 축제”로 서울 시민들과 서울을 찾은 국내외 여행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보안여관
 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비단 낡은 기차역뿐만이 아닙니다.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에는 경복궁의 서쪽 담벼락을 마주하고 서 있는 ‘보안여관’이 있습니다. 이 2층짜리 건물은 겉으로 보기에는 지금까지도 운영 중인 여관처럼 보이지만, 외관과 내부 골조를 유지하고 최소한의 보조 공사를 거쳐 2007년부터는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예술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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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에서 바라본 보안여관 >
출처 : 오마이뉴스 「80년도 더 된 여관, 이름 한번 묘하네」 14.07.21

 


 경복궁의 서쪽인 종로구 통의동, 체부동, 효자동 일대의 ‘서촌’은 예로부터 서민들의 삶터로서, 한옥이 가득한 양반동네 북촌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띠고 있고, 특히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서민형 벽돌건물이 많습니다. 서촌은 조선시대에는 추사 김정희, 겸재 정선이 벗들과 노닌 곳이며, 일제강점기에는 시인 이상의 <오감도>에 등장하는 “막다른 골목”의 실제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곳 ‘보안여관’은 1930년대부터 서촌의 안쪽을 지켜오며 윤동주, 이중섭, 서정주 등 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이 무작정 상경해 자리를 잡기 전 머물면서 인생과 예술에 대해 고민했던 공간입니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면서 2004년 철거 위기에 처한 보안여관을 살려낸 것은 문화예술 프로젝트 그룹 ‘메타로그’입니다. 메타로그는 한국 근대의 예술과 역사를 품어낸 보안여관을 매입하여 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지금의 보안여관은 다양한 문화예술이 이루어지는 실험공간으로서 예술가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이곳에서 먹거리장터를 운영하고, 매년 5~6개의 개인전과 서울시 주최의 전시, 공연 공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 대신 예술 작품들이 짐을 풀고 머무르는 ‘보안여관’은 과거와 현재가 함께 공존하는, 서촌의 매력을 고스란히 간직한 유일무이한 업사이클링 공간입니다.

뒤스부르크 환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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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스부르크 제철소 공원화 (좌)전(우)후 >
출처 : 송도국제업무단지 공식 블로그

 ‘라인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독일의 산업부흥을 이루었던 주역은 벨기에, 네덜란드와 국경을 맞닿은 서독일의 루르지방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최대 규모를 자랑했던 뒤스부르크의 ‘티센제철소’는 철강 산업이 쇠퇴하면서 1985년 문을 닫게 됩니다. 이에 정부는 낡고 쓸모없어진 공장을 철거하려했지만 뒤스부르크 주민들은 제철소의 철거를 반대했습니다. 주민들은 제철소 덕분에 도시가 활기를 띠고 성장했던 그 기억을 간지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에 정부는 주민들의 뜻을 받아들여 1989년 공원설계를 공모했고, 1997년 오랜 시간을 간직한 친환경생태공원으로 재탄생했습니다. ‘뒤스부르크 환경공원’은 과거 제철소의 거의 모든 시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공장의 사무실은 유스호스텔로 바뀌고, 광석저장벙커는 암벽등반 코스로 조성되어 젊은이들과 가족단위의 이용객이 찾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100미터 정도의 가스저장탱크에는 물을 채워서 스킨스쿠버가 가능한 다이빙센터로 운영하여 주민들과 여행객들에게 색다른 체험공간을 제공합니다. 뿐만 아니라 굴뚝은 전망대로, 크고 둥근 파이프는 아이들의 미끄럼틀로 변했고, 가스엔진이 있던 공장은 컨벤션센터로 개조하여 각종 행사에 쓰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뒤스부르크는 도시의 역사를 뜻 깊게 간직할 줄 아는 지역 주민들이 지켜낸 역사와 생태가 공존하는 진정한 업사이클링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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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용도로 활용되는 뒤스부르크 내부 >
출처 : 송도국제업무단지 공식 블로그



선유도공원
 뒤스부르크환경공원이 탈산업화 시대의 바람직한 업사이클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세계의 여러 도시에서 공장부지를 공원으로 재활용하는 시도들이 나타났습니다. 양화대교에 걸친 ‘선유도 공원’은 과거 정수장 건축구조물을 재활용하여 국내 최초로 조성된 환경재생생태공원입니다. '선유도'는 섬의 경치가 아름다워 신선이 놀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선유봉'에서 유래합니다. 산수화의 대가 정선이 그림으로 묘사할 정도로 아름다웠던 한강변의 봉우리 선유봉은 원래 해발고도 약 40미터 정도였으나, 일제강점기 때 채석장으로 사용되면서 낮은 섬으로 변해버렸습니다. 1978년부터 약 20년을 넘게 정수장으로 사용되었던 선유도의 정수장은 기능이 강북정수사업소에 통합되면서 버려진 공간이 되었고, 서울시가 이를 공원으로 조성하여 2002년 4월 시민들에게 개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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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녹색기둥의 정원. 담쟁이가 덮여진 30개의 기둥 >
출처 : 이투데이 「[장세영의 서울 숨은그림 찾기] 녹슨 정수공장에 생태를 입히다 '선유도공원'」 14.05.22

선유도공원역시 뒤스부르크환경공원을 모티프로 해서 기존의 정수장 구조물을 철거하지 않고 최대한 활용하여 공원으로 조성한 것이 특징입니다. 공원은 크게 녹색 기둥의 정원, 수생식물원, 수질정화원, 시간의 정원 등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녹색기둥의 정원은 1000여 평의 공간에 콘크리트건물의 지붕을 걷어내고 기둥 30개만을 남겨놓은 공간으로, 30개의 기둥에 담쟁이가 타고 올라 보는 각도에 따라, 계절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집니다. 시간의 정원은 이름대로 약품침전지를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물이 흐르던 다리를 공중 산책길로 만드는 등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공간입니다. 다양한 수생식물과 생태 숲을 감상할 수 있고 다양한 볼거리와 자연체험의 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살펴봤듯이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여러 도시의 재활용된 공간들은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공간으로서, 탈산업화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오래된 공간의 ‘업사이클링’은 세계적인 도시재생의 흐름에 발맞추어 지속 가능한 문화를 창조해내는 아름다운 방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1. ECONOMY Chosun 「혁신 일어나는 도시의 3대 조건 기술·관용·인재」 10.0 5.28
2. donaA.com뉴스 「[메트로 스케치]선유도 공원 정수장-청계고가 콘크리트 잔해」 03.10.10.
3. 한국일보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영웅을 보다」16.10.24
4.중앙일보 「낡은 발전소 건물 ‘창조적 재활용’… 4500만명이 다녀갔다」2010.5.4.
5.전성기News 「문화역서울 284에서 만나는 반 고흐의 일생」 16.01.28
6.오마이뉴스 「80년도 더 된 여관, 이름 한번 묘하네」 14.07.21
7..엘르걸 「Let it be 낡음의 미학」 10.11.18.
8. 네이버 지식백과 대한민국구석구석 여행이야기 「서촌마을, 경복궁 서쪽 동네가 들려주는 이야기」
9. FROM A (http://froma.co.kr/157)
10. 프랑스관광청 공식사이트
11.포스코 기업 블로그 hello, posco
12. 네이버 매거진캐스트 「도시, 다시 태어나다」
13. 송도국제업무단지 공식 블로그
14. landschaftspark (http://www.landschaftspark.de/der-park/einfuehr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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