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진11호 ]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17-01-23
Q : “봉산문화거리 방문하신 느낌이 어떠세요?”
A : “대구의 인사동이라는 봉산문화거리를 방문했는데 너무 폐쇄적이고 황량하네요. 프랑스 여행가이드에 대구는 볼거리가 많이 없다고 한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현재 대구에 거주 중인 프랑스인 교수와 나눈 대화입니다. 대구의 인사동을 꿈꾸며 만든 봉산문화거리는 왜 의도와는 달리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오늘날의 거리와 건축물의 모습은 오랜 시간이 켜켜이 쌓여 이루어진 대구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대구의 도시 구조와 봉산문화거리의 역사적 변화를 통해 봉산문화거리에 대한 생각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대구 읍성 경제의 발전과 대구 문화의 발달과정
대구 읍성은 시가지 중심부를 에워싸고 있는 동성로와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 거리를 잇는 구간이었습니다. 읍성 주변으로는 조선 사람들뿐 아니라 중국 상인들까지 찾아드는 큰 장이 열렸고, 읍성의 문 앞에는 저마다 상점이 세워지고 노점이 열렸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대구 중심부로 상권을 넓히려는 일본인 상인들은 성벽 때문에 대구가 근대 도시로 발전하지 못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대구 군수 겸 관찰사인 친일파 박중양을 앞세워 대구 읍성을 철거해버립니다. 철거된 읍성은 도로가 되었으며, 일본 자본의 투입으로 우리 선조들이 가지고 있던 전통 상권은 일본인들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이 읍성 상권을 중심으로 대구의 경제가 발전하여 오늘날 대구 시가지 형태의 바탕을 이루었습니다.
대구는 본래 미술, 음악을 비롯해 무용, 문학, 연극 등을 아우르는 전통을 가진 예향(藝鄕)이었습니다. 그러나 산업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양적 성장 위주의 경제 개발로 문화와 예술에 대한 질적 성장은 자연스레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경제개발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것처럼, 문화 예술에 대한 투자와 관심 또한 수도권에 집중되어 그 밖의 지역은 이른바 문화의 빈곤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봉산문화거리는 침체되었는가?
문화는 경제를 바탕으로 발전하고 활성화 됩니다. 문화와 경제는 개별적이지만 그 둘이 만나게 되면 무한한 시너지효과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현재 대구의 경제구조는 대구 읍성을 중심으로 동성로,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를 기준으로한 번화가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즉, 도시 구조적인 관점에서 대구는 읍성을 중심으로 경제 발전을 이룬 ‘환(環)식 도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오늘날 대구시가 추구하는 문화 구조는 근대골목을 표상으로 한 문화 시스템 구축입니다. 이는 각 지점들을 잇는 ‘망(網)형식 도시 구조’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문화는 경제를 따르게 됩니다. 즉, 경제 구조와 문화 구조가 서로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대구의 문화 생태계가 침체되었던 것입니다. 도시·경제 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골목 위주의 문화개발은 도시의 특성과 엇박자를 이룹니다.
<(좌)환식 대구 경제구조, (우)망형식 대구 문화구조>
또한 문화와 경제의 상충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소는 달구벌대로입니다. 달구벌대로의 북쪽(이하 북부지역)은 읍성을 둘러싼 물적 기반으로 문화가 발전할 수 있었지만, 달구벌대로의 남쪽(이하 남부지역)은 문화 개발을 위한 경제적 기반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남부지역은 북부지역의 유동인구를 유입하여 문화를 활성화해야 합니다. 하지만, 넓은 달구벌대로와 낮은 문화발전으로 인해 남부지역으로 유입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처럼 서로 상충되는 도시의 구조와 달구벌대로, 그리고 문화발전의 지체가 봉산문화거리의 쇠퇴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봉산문화거리에 도시재생이 필요한 이유
달구벌대로 남쪽의 문화 발전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문화적 교류 없이 단절되어 있습니다. 달구벌대로 남쪽의 문화거리를 재생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요? 그저 문화거리에 많은 예산을 투입한다고 해서 활발한 도시재생이 일어나지는 않은 것입니다. 대구시는 골목 투어에서부터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문화도시로 성장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극과 같은 문화의 기반을 다지는 데는 소극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극단적인 예로 연극의 경우는 수많은 창작물들이 나왔지만 정작 대구를 대표할 만한 콘텐츠는 없는 실정입니다. 근대로(路) 골목 투어는 대구시를 문화도시로 성장시킨 하나의 발판이지만, 그 명성이 쉽게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현재 대구시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바로 대구의 정체성 찾기입니다.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공장이 필요하듯이 문화를 창조하기 위해서도 그에 적절한 환경이 필요합니다. 대구시 문화발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소비는 있지만 생산이 없다는 것입니다. 문화의 생산 인프라를 위해 필요한 대지 선정 요건으로 달구벌대로와의 접근성과 문화를 가꾸기에 적절한 대상지가 고려되어야 합니다. 이런 조건에 부합하는 곳이 바로 봉산문화거리입니다. 또한 봉산문화거리의 마지막 블록 도로 교차로는 가구 골목, 고미술품거리, 김광석 골목, 헌책방 골목 등의 문화 자원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허브입니다. 이 교차로는 문화 생산의 중심지 역할이 되기에 충분한 잠재력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봉산문화거리의 과제
지속 가능한 문화거리를 위해서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회적 방문에 그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봉산문화거리를 경험해 본 사람들은 왜 꾸준히 이곳을 찾지 않을까요? 일부에서는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게 벽화를 통한 도시 재생을 하자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도시재생은 겉모습 치장에 불과하며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봉산문화거리 내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좀 더 근본적인 구조를 분석해 보아야 합니다.
이곳을 찾는 이유는 다양한 예술 작품을 경험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같은 전시를 하고 있다면 봉산문화거리를 다시 방문할 이유가 없습니다. 봉산문화거리는 지속적인 방문을 위해 다양한 작업과 전시를 선보여야 합니다. 하지만, 봉산문화거리의 특성으로 인해 거리에서 전시 작품을 만나보기 어렵습니다. 이 거리의 건물들은 대개 용도는 화랑, 화방, 표구사입니다. 이들의 작업은 대체로 거리에서 작업 활동이 보이지 않는 폐쇄적인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 때문에, 이곳을 지나는 시민들이 그 작업들에 쉽게 접근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봉산문화거리의 도시재생 방향
문화거리를 재생하기 위해서는 가로에 대한 정비도 중요하지만, 방문자들의 지속적인 방문을 위해서는 블록 안으로의 접근이 용이해야 합니다. 이곳의 재생을 위해서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기존 문화거리의 가로 정비, 가로 활성화는 사람들을 모을 수는 있지만, 머무르게 할 수는 없습니다. 봉산문화거리가 활성화 된다면, 거리에 접한 건축물의 용도는 상업적인 것으로 바뀔 것입니다. 또한 방문자들의 다양한 수요를 기존의 상가들로는 충족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문화거리 블록 안으로의 접근은 봉산문화거리 재생 방향의 중요한 지향점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문화거리 자체가 화랑들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 수요층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적인 방문자들은 문화와 예술에 대한 지식을 쌓기 위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즐기고, 때에 따라 함께 참여해 볼 수 있는 문화거리를 찾고 싶어 합니다. 이러한 방문자들의 수요를 만족시키는 도시재생이 이루어진다면, 봉산문화거리는 대구의 예술을 상징하는 보물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