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진23호 ]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18-01-31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위치한 칼스루헤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 가량 이동하면 나타나는 곳으로, 인구가 약 29만 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도시입니다. 소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철로 교통의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도시에 위치한 대규모의 중앙역사 주변은 이곳을 통해 이동하는 많은 사람들로 항상 붐비고 있습니다. 칼스루헤는 또한 과거 중화학 공업의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이곳에 있었던 수많은 공장들은 1970년대 중화학 공업의 쇠퇴로 인해, 다른 지역으로 터전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에 시에서는 1980년대부터 독일 남부 도시 부흥 계획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는데, 이때 탄생한 것이 바로 ‘ZKM(Zentrum für Kunst und Medien)’이라는 미디어 아트 미술관입니다.
처음에는 유동 인구가 많은 철로 교통의 중심지라는 이점을 살려, 역사 주변에 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웅장한 건물을 지을 계획이었습니다. 칼스루헤의 자랑인 IT기술과 문화예술을 접목시켜, 그 결과물을 시민들이 직접 체험해보는 장소로 활용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초 계획했던 범위를 넘어서는 예산 문제 때문에 해당 계획이 현실화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시에서는 도시의 특성과 사정에 맞는 다른 방법을 다시 모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그들의 눈에 띈 것이 바로 2차 세계대전 이 후 20년 넘게 방치되어 있던 ‘탄약 공장’과 ‘탄약 창고’였습니다. 이 장소는 전쟁 당시 세워진 곳으로, 칼스루헤 시민뿐 아니라 독일 국민들 모두에게 지우고 싶은 전쟁의 상흔이자 반성의 대상이었던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상흔을 새로운 예술로 승화시키자’라는 주장이 칼스루헤 시민들에게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고, 그렇게 하여 버려진 탄약 공장은 새로운 예술을 위한 공간인 ‘ZKM’으로 변신하게 됩니다.
ZKM 미술관은 건물의 길이만 해도 3백 12미터에 이를 정도의 대규모 시설입니다. 외관은 특별한 장식도 없는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곧 왜 이 미술관이 ‘예술과 미디어의 중심’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내관의 기본 구조는 탄약 공장이었던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기본 골격 외의 부분들은 근대 건축물의 웅장한 중정의 모습과 화려한 미디어 아트들이 적절히 융합된 다양하고 새로운 모습들로 꾸며져 있습니다.
<ZKM의 외관>
출처 : 직접촬영
이와같이 첨단 미디어 기술과 예술과의 화합을 통해 탄생한 ZKM은 오늘날 시를 찾는 사람들에게 독특한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미디어 기술과 예술을 접목시켰음에도, 그 물리적 결합이 어색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특이한 점입니다. 이는 탄약 공장을 ZKM으로 탈바꿈시키는 공사를 할 당시에 내건 슬로건인 ‘단락 짓지 말고,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매개체가 되자’라는 철학적 바탕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이러한 특별한 철학 덕분에 전시와 회의 및 연구의 경계도 허물어졌습니다. 한 공간에서는 전시를 하고, 그 전시를 잘하기 위한 회의를 바로 옆 공간에서 진행하며, 다른 공간에서는 미디어 아트를 발전시키기 위한 연구가 이루어집니다. 이처럼 ZKM을 방문한 사람들은 한 장소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ZKM내부 : 전시, 회의, 연구가 동시에 이루어 지는 모습>
<ZKM내부 : 근대 중정과 미디어 아트가 함께 공존하는 모습>
출처 : 직접촬영
ZKM에서는 아주 다양한 연령대의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미디어 아트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어린이들, 그들을 데리고 온 학부모 및 전시를 준비하는 예술가, 과학자, 교수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미술관을 찾습니다. 공장 건물의 특성상 작은 공간들 보다는 대규모 공간들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완성된 전시 작품 옆에는 여전히 준비 중이 전시들이 많이 있으며, 이 모든 과정은 관람객들이 함께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술가, 과학자 또는 대학생들이 자신들이 만든 작품을 직접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방문객들이 체험해볼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합니다. 이처럼 ZKM은 과학자나 예술가, 대학생, 교수들에게는 기회의 공간이자 연구의 공간으로, 관람객 특히 아이들에게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공간이자 꿈의 공간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전쟁의 상흔이었던 탄약 공장을 칼스루헤의 자랑인 미디어 아트로 승화시키면서도 그 과정이 경제적이었다는 점 등은 이 프로젝트의 큰 의의입니다. 또한 건물을 새롭게 지어올린 것이 아니라 과거의 건축물이 지닌 역사를 고스란히 살리면서 이를 리노베이션하였기 때문에 시민들이 더욱 뜻 깊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소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참고자료>
1. http://zkm.de/
1.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 - 이정후
대구 창의 도시재생 글로벌 기자단(D-UrbanFD). 정 순 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