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진22호 ]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18-01-09
<브릭스톤 폭동>
출처 : BBC News, 「Thatcher 'considered arming police' during 1981 riots」, 11.12.30
<Pop Brixton>
출처 : popbrixton.org, 「Pop Brixton is an original project that supports local jobs」
브릭스톤의 과거
영국 런던의 남서부에 위치한 브릭스톤이 처음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1900년대 초 템스 강의 남북을 잇는 다리의 건설이었다. 그 이후 이곳은 런던의 중심부로 들어가는 중간 지역의 역할을 하며 성장했다. 중산층이 급격하게 유입되면서 주거 지역이 확장되었고, 런던 남부의 쇼핑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시기에 설립된 Morleys 백화점은 1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브릭스톤 하이스트릿에서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Morleys 백화점>
출처: Londonist, 「Inside The Brixton Department Store With 130 Years Of History」, 16.07.13
두 번째 변화의 계기는 1948년 서인도지역의 캐리비안계 아프리칸의 영국 유입이었다. 이들은 클랍함과 브릭스톤 지역에 정착하였다. 급격한 이주민의 증가는 실업률과 범죄율 상승에 영향을 끼쳤고, 인근의 주거지역 부족 및 편의시설의 낙후화 등의 사회적 문제로 이어졌다. 갑작스런 인구와 환경의 변화는 1981년 폭동의 원인이 되었다. 런던 지방정부는 거리에서 발생하는 범죄를 줄인다는 명목 하에 의심이 되는 사람들을 수색, 심문할 수 있도록 했는데, 그 결과 시민 천여 명이 강제 수색을 당하였다. 이에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던 흑인 청년들은 시위에 참여하였고, 이후에도 이어진 인종 차별적 처우는 경찰에 대한 불신을 키웠으며 이는 다시 크고 작은 규모의 시위로 이어졌다.
<Windrush Generation>
출처 : the telegraph, 「Windrush Generation: 'They thought we should be planting bananas'」, 15.06.22
이후에도 브릭스톤 지방정부 및 정책에 대한 불만은 1995년 폭동으로 이어졌다. 그와 동시에 거꾸로 흑인 공동체를 목표로 삼는 폭탄 테러도 발생하게 되었다. 이에 이 지역의 인종 차별 및 불평등을 해소시킬 사회적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되었다.
브릭스톤의 현재
2015년 5월 지방정부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이 지역에 거주하는 캐리비안계 흑인의 비율은 런던에 비해 평균 두 배 이상이다. 아프라카계 흑인의 비율도 런던 평균을 웃돈다. 반면 인도계나 파키스탄, 아시안계의 비율은 런던 평균보다 낮아 흑인의 거주 분포가 특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2016년 <가디언>지의 조사를 살펴보면, 이 지역에 거주하는 영국인의 비율이 60% 미만에 불과하며, 이곳에서는 여러 인종들이 뒤섞여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Lambeth Black, Asian and Minority Ethnic Structure>
출처 : Lambeth Council, 「Lambeth Demographic Factssheet」, 15.05.
<Ethnic Breakdown of Brixton>
출처 : the guardian, 「How has Brixton really changed? The data behind the story」, 16.01.14
이러한 인구의 변화는 지역 경제와 생활환경에 영향을 미쳤다. 먼저 10년간 이 지역 부동산의 구입 가격이 76% 상승했다. 급격한 성장을 한 쇼디치(62%)나 루이샴 지역(67%) 등의 상승폭과 비교해도 그 성장의 폭이 가파르다. 인구의 급격한 유입으로 인해 주거시설의 수요가 늘어남으로써 시장이 빠르게 활성화된 결과이다.
브릭스톤 지역을 둘러싼 사회적 문제도 등장했다. 실제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갱단의 활동으로 크고 작은 사건들이 발생하였으며, 이들은 수십 년간 경찰과 갈등을 벌였다. 또 언론에 의해 ‘마약의 수도’라고 평가될 만큼 불법 마약류의 유통이 성행하기도 했다. 이렇게 브릭스톤을 둘러싼 여러 이슈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폭력과 배척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와 성장과 공존이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동시에 만들어 냈다.
<Ethnic Breakdown of Brixton>
출처: the guardian, 「How has Brixton really changed? The data behind the story」, 16.01.14
공동체를 만드는 ‘재생’
2000년 이후 램바스 지방정부는 폭동과 테러로 얼룩진 브릭스톤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브릭스톤 시장의 중심 상권 개발을 지원하였다. 이에 따라 농민들과의 연계를 통한 과일 시장(Farmer’s Market), 레스토랑 및 상가, 소규모 갤러리와 흑인문화기록보관소(Black Cultural Archives) 등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주도하여 운영하면서 여러 이벤트와 공연을 지속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흑인 문화 기록소>
출처 : Time out, 「Brixton's Black Cultural Archives crowned London's Best New Building」, 15.07.09
특히 시장의 중심에 위치한 팝 브릭스톤(Pop Brixton)은 지방정부에서 운영하는 복합 공간으로, 2014년 건축가 칼 터너(Carl Turner)와 도시 설계자의 협업으로 제안되었다. 신생 기업을 위한 사무 및 작업 공간, 다양한 나라의 식음료를 즐길 수 있는 휴식 공간 등이 이곳에 있다. 또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들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 및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상징적인 장소로 자리 잡았다.
<Brixton Pound>
출처 : BBC News, 「Cash machine for the Brixton pound opens in south London」, 16.04.12
뿐만 아니라, 브릭스톤 시장에서 실제 화폐로 쓰이는 ‘브릭스톤 파운드(Brixton Pound)’를 거래의 수단으로 삼고 있어서, 실험적인 지역 화폐를 통한 지역 공동체의 성장이라는 상상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런던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 강력한 지역 경제 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브릭스톤은 이러한 지역 화폐의 활용으로 지역 상권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1990년도에 만들어진 상인회는 40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주일에 한두 번 오는 비정기적인 상인들에게도 장소를 제공하여 자신의 물건을 이곳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가판대의 설치와 이동이 쉬워 나가는 것도 자유롭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존 상권과 임시 장터의 시너지 효과는 지역 주민이 아닌 외부인들의 접근 또한 쉽게 만들어 브릭스톤의 고유한 개성이라 할 수 있는 ‘다양성’의 가치를 키운다.
즉 ‘공동체 이익회사(Community Interest Company·CIC)’라 할 수 있는 브릭스톤 상인회는 비영리 자선단체와 달리, 지역 공동체를 위한 일이라면 상업적인 활동과 동시에 비영리 단체처럼 펀딩을 통한 비상업적인 활동까지 펼치며 이는 지역 활성화에 커다란 요소로 작용한다.
브릭스톤의 미래와 ‘다름의 가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단어가 되었다. 낙후된 지역을 개발하고자 하는 지역 주민 혹은 정부의 노력은 그 의도와는 달리 고급화, 상업화라는 결과로 이어지곤 했다. 브릭스톤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주거 환경의 고급화는 임대료의 상승으로 이어졌고, 기존의 거주민들은 점차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 또한 이 지역만이 가지고 있던 특별한 매력과 정체성을 점차 잃어갔다. 때문에 주민들은 지방정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전달하였다. 이에 정부는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 시키고 임대료 상한제 등의 제도 도입을 통해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브릭스톤 주민들은 스스로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외치며 공동체를 적극적으로 지켰다. 또 지역을 방문한 관광객들을 위한 이벤트를 계획하는 데에도 노력하고 있다.
2017년 대한민국의 외국인 이민자 비율은 총인구대비 3.4%이며, 이 비율은 계속해서 상승할 전망이다. 런던의 작은 동네 브릭스톤에서 일어난 일련의 변화와 그로 인한 갈등은 이제 곧 한국 어느 지역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혹은 일어나고 있는 일일 수 있다. 브릭스톤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다양성’이라는 가치로 바라볼 수 있었듯이, 우리 한국 사회도 다름의 가치를 인정할 때, 더 따뜻한 공동체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
대구 창의 도시재생 글로벌 기자단(D-UrbanFD). 박 종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