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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읍성 다시 시민의 품으로

[ 웹진14호 ]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17-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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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앙로 일대에는 조선 중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대구 읍성’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져 그 흔적만 남은 읍성은 이제 시민들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오려 합니다. 바로 ‘대구읍성 상징거리 조성사업’을 통해서입니다. 이 사업은 대구시와 중구청이 지난 2011년 시작해 올해 말 완료될 예정입니다. 북성로와 서성로를 시민들이 걷기 좋은 거리로 만들고 일제에 의해 허물어진 대구읍성의 존재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진행되는 이 사업은 이 일대의 가로경관 개선과 대구 원도심의 재생 기반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대구 도심에 또 하나의 관광자원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대구읍성, 그 100년의 역사
조선시대에 대구는 한양을 오가는 길목에 위치한 교통의 요지였고, 대구읍성은 1591년, 왜구의 침략에 대비해 만들어진 것으로 전합니다. 원래는 토성으로 축조 되었지만 성을 쌓은 이듬해 임진왜란으로 파괴되었으며, 난이 끝난 뒤에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축조되지 못하다가 1736년 성을 다시 쌓았습니다. 이후 170여 년 동안 대구를 지키던 대구읍성은 1907년, 친일파인 경상도 관찰사 서리 박중양에 의해 철거되었습니다. 당시 일제는 성벽으로 인해 대구 발전이 힘들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성벽이 일본 상인들이 읍성 밖에서 대구 도심으로 진출하는데 걸림돌이 되었기에 이를 허물어버린 것입니다. 일제는 성을 무너뜨리고 대구 중심부에 십자 도로를 건설했습니다. 그리고 읍성을 허문 자리에 신작로를 만들게 되는데 이 길이 바로 지금의 동성로,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입니다.

북성로 일대는 일제강점기 대구 최고의 번화가였으며 광복 이후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공구골목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하지만 산업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공구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점차 뜸해지면서 북성로는 차츰 쇠퇴하게 되었습니다. 서성로 일대는 대구의 이름난 부자들이 많이 살았던 동네였으며 한국전쟁 이후로는 돼지고기집이 늘어서 있는 곳이었습니다.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깡통이나 드럼통 등을 고쳐 팔면서 ‘깡통골목’이라고도 불리다 지금은 주로 철물점이나 인테리어 업체들이 자리 잡고 있는 거리입니다. 동성로 일대에는 성벽이 허물어진 뒤 1960년대까지 대구역을 중심으로 한 교동시장 상권이 형성되었습니다. 그 후 1966년 한일극장이 영화관으로 재개장하고 1969년에는 대구백화점이 생기면서 점차 공평동, 중앙파출소 방향으로까지 상권이 확장되어 지금과 같은 번화가로 성장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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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읍성 옛 지도>
출처 : 대구광역시청 홈페이지

 

 


100년 만에 맞이한 새로운 모습
대구시는 2007년 동성로의 ‘공공디자인 개선사업’을 시작으로 근대문화골목을 조성하는 등 대구의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도심지역을 재생하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오고 있으며, 2011년부터는 북성로와 서성로 일대에서 ‘대구읍성 상징거리 조성사업’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북성로 구간에는 상가 간판을 정비하고 인도를 설치하여 가로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사업이 한창이던 지난 2014년, 인도 설치를 위해 바닥을 굴착하던 현장에서 대구읍성의 기저부와 성돌의 일부가 발견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중구청은 이를 활용해 ‘대구읍성 거리박물관’을 조성하기로 계획하였고 북성로 일대의 대우빌딩 인근, 꽃자리다방, 북성신협, 삼양베어링상사 앞 등 모두 네 곳을 선정했습니다. 거리 박물관은 인도 1m 아래에 옛 대구읍성 공북문과 당시 생활상 등을 재현한 모형을 설치하고 투명유리를 덮어 길을 걷는 시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특히 대우빌딩 인근에는 1905년의 대구읍성을 재현한 모형과 함께 무인안내시스템을 설치하여 대구읍성의 옛 모습과 그 역사를 시민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서성로 구간은 대구읍성 구간 가운데 유일한 간선도로로 오가는 차량이 많은 지역입니다. 대구시는 이러한 특성을 고려하여 상가들의 간판을 정비하고 서성네거리 북편에서 대구은행 북성로지점까지 180m 구간의 도로에 대구읍성 성벽을 재현한 모양의 중앙분리대를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또 향촌동과 북내동 일대의 도로는 아스팔트 거리를 점토 블록 인도로 바꾸어  걷고 싶은 경관 트레일을 조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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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읍성 거리박물관(좌)과 대구읍성 재현 중앙분리대(우)>
출처 : 본인촬영
  
 

대구 도심에는 그밖에도 대구읍성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앞서 사업이 시행된 동성로와 남성로는 바닥에 성벽 모양의 돌길을 만들어 이곳이 옛 읍성이 있었던 거리임을 나타냈고, 동성로 가로등을 읍성의 높이인 3.5m에 맞추어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대구읍성의 문이 있던 네 곳에는 표지석이 설치되었고 도심 곳곳의 건물이나 담장에 대구읍성의 돌이 쓰였으며 중부경찰서의 담장 역시 성벽 모양을 따라 조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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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성로(좌)와 동성로(우)의 성곽 재현 바닥돌>
출처 : 본인촬영

 

 

 


대구 도심의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대구읍성 옛길을 방문한 사람들은 옛 성곽의 모습을 보며 감탄을 이어갔습니다. 대구로 여행을 온 서울의 한 가족은 도심의 거리박물관을 보며 “도심 한복판에서 성벽이 있던 길을 따라 걸으며 옛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색다른 경험이다”라고 말했고, 아이들은 길 아래에 조성된 거리 박물관이 신기한지 바닥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대구읍성은 대구의 새로운 관광자원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구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인 ‘동성로’의 지명이 대구읍성의 역사에서 유래했으며, 수많은 시민들이 걷고 있는 동성로가 옛 대구읍성의 성곽이 있었던 길이라는 것을 아는 시민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실제로 많은 시민들은 동성로 바닥의 돌이 대구읍성을 상징한다는 사실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아직까지 ‘대구읍성’이라는 이름은 시민들에게는 생소한 것이 사실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오랜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는 대구 구(舊)도심은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청라언덕부터 진골목에 이르는 근대문화골목을 비롯해 김광석 다시그리기길, 순종황제 어가길 등 다양한 골목이 저마다 새로운 이름으로 시민들에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이 골목들 역시 예전에는 특별한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은 후미진 골목길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주변 환경을 개선하고 골목에 이야기를 더하자 어느새 대구를 대표하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대구읍성은 옛 모습을 창의적이고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여느 성터와는 다른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곁을 떠났던 대구읍성이 다시 시민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면 ‘대구읍성 상징거리’는 대구의 역사를 기억하는 또 하나의 명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자료>
1.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여행이야기-고단했던 근대골목에서 시작된 싱그러운 변화』, 2014.06
2. 파이낸셜뉴스, 김장욱, 『사라진 대구읍성, '거리박물관'으로 재탄생』, 2017.01.23.
3. 대구일보, 이혜림, 『“거리박물관에 옛날 대구읍성 흔적 그대로 있네”』. 2017.01.23.
4. 매일신문, 이윤주·박다정, 『[카드뉴스]대구 동성로 돌길의 정체는?』, 2015.12.04.
5. 대구광역시청 홈페이지
6. 대구광역시 중구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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