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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거닐다, 대구를 만나다』를 읽고

[ 웹진 21호 ]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18-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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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근대골목은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되며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 책은 지금은 대구의 명물이 된 골목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지금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오래된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철거’가 아닌 ‘보존’으로 새롭게 태어난 대구 근대 골목과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그리고 화려하게 변신한 버스킹 골목 동성로와 옛 영광을 품은 북성로, 또 아픈 역사를 간직한 남구 이천동 골목길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 직접 발로 뛰며 담아낸 이야기들입니다. 골목 뒤에 숨은 ‘골목 뒷담’을 읽는 즐거움이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은 특히 골목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 소개하고 있기도 합니다. ‘오래된 만큼 참신했고, 낡은 만큼 황홀했다’는 표지의 문장처럼, 우리 골목의 어제와 오늘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1부. ‘철거’ 아닌 ‘보존’으로 새로 태어난 골목
어느새 골목길은 대구를 대표하는 관광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특히 전국적인 관광지로 떠오른 ‘근대골목’이 대표적입니다. 물론 이곳은 대구 골목길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골목길은 인문지리 혹은 주민 생활사의 측면에서 발굴 및 조명해야 할 요소가 많은 공간입니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어떤 매력적인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 우리는 여전히 대구 골목길의 과거를 찾으면서 오늘을 살피고, 동시에 미래도 상상해봅니다.

2부.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2015년 4월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대표 관광지 100곳’을 발표했습니다. 대구에서는 골목길만 세 곳이 여기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바로 근대골목과 안지랑 곱창골목, 그리고 가수 김광석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의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하 김광석길)입니다. 근대골목은 ‘역사’가, 안지랑 곱창골목은 ‘맛’이 소재라는 점에서 여느 관광지와 다름없었지만, 김광석길은 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위인전 속의 위대한 인물이 아닌 겨우 20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가수가 사람들의 발길을 끌고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전국 곳곳에 가요 작곡가나 가수를 기념하는 관광지가 있기는 하지만, 대구의 김광석길처럼 전국적인 명소로 떠오른 사례는 없었습니다.

3부. 버스킹 골목, 동성로
건축가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는 ‘도시의 축제’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일상에서 표출할 수 없는 내적인 에너지를 발산하기 위해 사람들이 환상적인 이벤트를 꿈꾸는 것처럼, 도시도 도시만의 꿈이 필요하다.” 그러나 근대 이후 복잡해진 현대 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현대 도시에는 ‘거리의 악사’가 필요합니다. 이들의 연주가 사람들을 춤추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도시가 꿈을 꿀 수 있도록 만듭니다. 그 무대는 곳곳의 노천극장이고, 무수한 거리이며, 광장입니다. 대구에도 그런 공간이 있습니다. 바로 버스킹 골목, 동성로입니다.

 

4부. 골목길에서 다시 태어나는 근대 건축
건물은 낮에는 사람의 삶을 담고, 밤에는 사람의 꿈을 담습니다.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사람들이 땀 흘려 노력하면서 그곳에 아름다운 상상을 함께 불어넣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도시에서는 이런 건물들이 ‘성장과 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허물어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외면당하고 방치된 덕분에 대한제국에서 일제강점기, 그리고 1960년대 전후의 시기에 지어진 ‘근대 건축물’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좁은 골목길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대구에서는 수년 전부터 이 골목 속 근대 건축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리노베이션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5부. 소박한 삶의 공간, 미로골목
‘미로(迷路)’. 영어로는 ‘메이즈(maze)’ 또는 ‘래버린스(labyrinth)’, 순 우리말로는 ‘홀림길’입니다. 이는 ‘어지럽게 여러 갈래로 갈라져 한번 들어가면 다시 빠져나오기 어려운 길’이라는 뜻입니다. 미로라는 말이 골목길에서는 아마 이런 의미로 통할 것 같습니다. 처음 골목을 찾은 사람들은 홀린 듯 헤매며 아찔함을 느끼다 결국은 황홀감을 맛보고, 이내 출구를 찾고는 탈출의 쾌감을 얻는 ‘미로 찾기’ 놀이 같다고 말입니다. 반면 골목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큰길의 번잡함을 피해 목적지로 향할 때 쓰는 ‘지름길’입니다. 주민들에게는 인적이 드문 이점을 살려 짐을 놓아두는 공터로, 소박한 정원과 텃밭으로, 또 이웃과 정을 나누며 어울리는 쉼터로 다양하게 활용하는 삶의 공간입니다. 이러한 ‘미로 골목’이 대구에도 적지 않습니다. 다만 도시 개발의 영향으로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6부. 오래된 작은 골목
어떤 길을 골목이라 부르려면 그 규모는 최소한 어느 정도여야 할까요? 대구의 경우 큰 골목으로는 여러 개의 골목이 합쳐진 동성로, 서문시장과 칠성시장처럼 큰 시장통 골목이 여럿 있습니다. 또 크지는 않지만 안지랑 막창골목, 대신동 미싱골목, 김광석길과 같은 골목들도 있습니다. 이번에 살펴볼 골목들은 이러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작은 골목들입니다. 세월의 흐름 속에 이웃 가게들이 하나 둘 떠나며 규모가 줄어든 곳이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또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 덕분에 이름을 잃지 않고 있는 작은 골목들입니다.

7부. 골목을 잇는 다리
옛날 아이들의 일상은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발걸음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동네와 저 동네 사이에 가로놓인 ‘강’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강 위로 하나 둘 지어진 다리는 골목길의 혁신적인 확장을 뜻했습니다. 대구를 가로지르는 금호강 물줄기와 인접한 동구와 북구에 그런 흔적을 가진 다리가 몇 있습니다.

8부. 언덕을 이어준 골목
큰 대(大), 언덕 구(邱), 대구(大邱)는 하나의 큰 언덕이라는 이름을 지녔습니다. 대구 분지는 비교적 완만한 언덕 지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곳곳의 언덕을 중심으로 모여 살기 시작한 것이 대구의 시작이었을 것입니다. 골목길은 언덕과 그 주변에 놓인 마을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그 뒤로 언덕과 또 다른 언덕을, 즉 마을과 또 다른 마을을 연결하는 골목길이 하나 둘 놓인 것이 대구 골목길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9부. 다시 빛나는 북성로
번화가란 말 그대로 번성하여 화려한 거리를 뜻합니다. 거리의 번성을 좌우하는 것은 상업입니다. 대구의 번화가라 하면 동성로가 첫 손에 꼽힙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로부터 1970년대까지만 해도 경부철도 대구역 인근의 향촌동, 북성로 일대가 대구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였습니다. 일제시대에는 동경의 긴자 거리를 본떠 ‘은좌(銀座)’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밤에도 환한 가로등이 빛나고 있던 번화가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발길을 끌고 있는 북성로 골목은 오늘날 다시 빛나기 시작합니다.

10부. 중구 영화관 골목&남구 소극장 골목
영화는 많은 사람들을 극장으로 끌어 모아 꿈과 낭만을 보여주었고, 사람들은 그렇게 체험한 꿈과 낭만을 거리에 뜨겁게 풀어냈습니다. 지난 세기 극장은 번화가의 문화를 만든 랜드마크였습니다. 대구 최초의 극장은 1907년 태평로에 일본인 나카무라가 세운 금좌(錦座)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1920년 일본인과 조선인이 함께 자본을 댄 조선관이 화전동에 개관했습니다. 조선인 자본으로 세워진 최초의 극장은 바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만경관입니다. 만경관이 설립된 이후 향촌동을 중심으로 하는 원 도심에 1세대 극장 골목길이 형성되었습니다.

11부. 대중매체 속 대구 골목길

세기의 여배우 오드리 햅번이 주연한 영화 <로마의 휴일>은 영화의 배경이 된 촬영지 이탈리아 로마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명소를 꿈꾸는 골목길이 대구에도 적지 않습니다. 계명대학교 대명동 캠퍼스, 진골목 약전식당, 음악다방 쎄라비, 계산성당 등이 다수의 영화 및 드라마의 촬영지가 되었습니다.

12부. 지붕 없는 종교 박물관, 남산동
중구 남산동은 오래전부터 대구 사람들의 다양한 신앙이 집적돼 온 곳입니다. 큰 종교부터 민간신앙에 이르기까지, 희한하게도 대구에서는 유독 많은 종교가 이곳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지금 남산동 골목길을 걸으면 불과 몇 십 미터, 어떤 경우에는 몇 미터 거리마다 서로 다른 종교의 유적과 시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종교의 역사도 여기저기 밀집해 있습니다. 남산동은 지붕 없는 종교 박물관인 셈입니다.

 

13부. 아픈 역사 간직한 남구 이천동 근대골목
남구 이천동은 중구의 근대골목만큼 대구의 근대사가 곳곳에 깃들어 있는 동네입니다. 지난 세기 대구에서 울려 펴진 서양 음악 보급의 역사가 우리
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구에서 ‘물’하면 빼놓을 수 없는 장소도 이곳에 있습니다. 금호강이나 신천 같은 하천이 아닌 산에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천동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군이 주둔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광복 70년이 지난 지금 되돌아봐야 할 아픈 역사가 이곳에 서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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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서구 날뫼골 골목길>

출처 : 조선비즈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15/20171215000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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