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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도시의 조건

[ 웹진11호 ]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17-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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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미학지수(UAQ: Urban Aesthetic Quotient)
 『도시에 미학을 입히다』의 저자인 고명석 씨는 그의 책에서 화려한 디자인보다 그곳에 사는 사람의 삶의 질이 높을수록 도시가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디자이너나 건축가가 설계한 건축물보다 도시재생이 더욱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도시미학지수’라는 개념을 제안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도시미학지수란 ‘도시의 미감’과 ‘주민의 삶의 질’을 수량화 했을 때, 그 수치가 높을수록 아름다운 도시라는 이론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이는 도시가 화려하게 성장함과 동시에 주민의 만족도가 높다면 좋은 도시가 된다는, 어쩌면 당연한 말이기도 합니다. 『도시에 미학을 입히다』에서는 도시재생과 도시미학지수의 상관관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도시재생을 통해 도시가 어떻게 아름다워지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안전한 도시가 아름답다
 안전한 도시란 사람이 보행을 할 때 어떠한 위험도 없는 곳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까지도 치안 문제와 안전사고라는 도시의 위험은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도시는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셉테드(CPTED)와 교통정온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셉테드는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의 약자로 ‘환경설계를 통한 범죄예방 건축설계기법’을 말합니다. 안전한 공간을 구현하면 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론입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깨진 유리창 이론’이 있습니다. 1969년 미국의 심리학자 짐바르도(Phillp Zimbardo)는 번호판이 없고 유리창이 깨진 차를 뉴욕의 거리에, 그리고 온전한 차를 캘리포니아의 팔로알토시에 각각 세워두었습니다. 그런데 유리창이 깨어진 차에 집중적인 파손과 손상이 발생한 반면, 그렇지 않은 차에는 일주일이 넘도록 아무런 파손이 없었습니다. 이를 통해 무질서한 환경이 심리적으로 범죄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실험결과는 1982년 윌슨과 켈링에 의하여 지역사회 무질서와 범죄 발생의 개념으로 구체화됩니다. 이 이론은 도시의 영역으로 확대되어 뉴욕 지하철의 사례에도 적용되었습니다. 1980년대 당시 연간 60만 건 이상의 중범죄 사건이 발생하던 뉴욕시는 윌슨과 켈링의 주장을 수용하여 지하철의 낙서를 지우고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낙서 지우기 프로젝트가 완료된 뒤 이곳의 범죄는 75% 가량 급감했습니다.

 이처럼 도시는 작은 변화를 통해서 더 안전해질 수 있습니다. 어두운 골목길에 밝은 가로등을 설치하거나, 어두운 분위기의 구석진 공간에 벽화를 그려 그곳의 이미지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시민들의 안전에 도움을 주어 도시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분별한 벽화 조성 사업이나 가로 계획은 도시의 미관을 해치기도 합니다. 따라서 지구 단위의 계획 등을 통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도시의 보행 또한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계획되어야 합니다. 걷는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고, 두 다리는 가장 원초적인 이동 수단입니다. 자동차를 포함한 다양한 교통수단이 쓰이는 현대 사회에서 ‘걷기’는 개인적인 여건과 환경에 따라서 일종의 선택 사항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걷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 가운데 하나입니다.

 현재 도시는 교통 혼잡, 환경오염, 에너지 부족, 각종 성인병 및 비만 인구의 증가, 공동체 생활과 커뮤니티의 붕괴라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은 어쩌면 다시 ‘걷기’가 가능한 도시를 만드는 일과 이어져 있을지 모릅니다.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추구하고,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걷기 좋은 가로 조성, 통학로 안전 확보, 녹색교통의 실현과 같은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일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버클리 캠퍼스의 도시디자인 교수였던 도날드 애플야드(Donald Appleyard, 1928~1982)는 살기 좋은 길의 연구를 통해 이상적인 가로의 모습과 가로에서의 주민들의 권리에 대해 말합니다. 그는 아이들이 걸어서 등교할 수 있고, 주요 시설을 보행이나 자전거로 접근 가능해야 하며, 옥외 공간은 놀이와 학습, 생활이 가능한 장소로 이용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교통으로 부터 근린주구(Neighborhood Unit), 즉 도시계획 접근 방법의 하나로서, 어린이놀이터, 상점, 교회당, 학교와 같이 주민생활에 필요한 공공시설의 기준을 마련하고자 초등학교 도보권을 기준으로 설정된 단위주거구역을 기준으로 하는 도시계획 접근 개념을 중시합니다.

 

 이 ‘근린주구’를 보호할 것을 주장했던 그는 거주민과 보행자의 권리를 우선시 하는 새로운 근린 개념인 보차혼용도로를 위한 보네르프(Woonerf), 즉 1970년 네덜란드 델프트시에 적용된 보차공존도로를 위한 다섯 가지 기준들을 제시함으로써 차량 속도와 교통량을 줄여 보행자 및 자전거 이용자의 도로이용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만들고 소음이나 대기오염으로부터 생활권을 보호하자는 주장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였습니다.

 보네르프를 위한 다섯 가지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네르프에 들어왔음을 알리는 관문, 차량 속도를 늦추는 곡선 가로, 차량 속도를 늦추면서 거주민과 보행자에게 기여하는 나무나 놀이 시설들의 설치, 보행자 도로와 차량 전용도로의 경계석 제거, 도로와 집 사이에 철로 된 벽을 형성하지 않기 위한 주차의 간헐적 배치 등입니다. 자동차 교통과의 공존이 필수인 현대 주거지에서, 애플야드의 방식은 차량 통행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보행자를 우선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국내에서 보차공존도로가 처음 도입된 곳은 덕수궁 돌담길입니다. 서울의 덕수궁 돌담길은 1997년 도로 정비로 보행자 중심 거리가 되었습니다. 이 길은 애플야드의 이론에 적합하게 차량의 감속을 위해 곡선의 가로를 조성하고 가로의 경계석을 제거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2차선에서 절반으로 차도의 폭을 줄이고, 덕수궁길의 입구에 사괴석(정육면체 형태의 화강석)을 교차로에 설치하였습니다. 이 사괴석은 심리적, 물리적으로 운전자가 속도를 줄이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 결과 덕수궁 돌담길은 1998년에 ‘제1호 걷고 싶은 거리’로 선정되기도 했고, 2006년 건설교통부에서 주최한 인터넷 공모에서 우리 국민들이 뽑은 ‘가장 아름다운 길’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안전한 가로가 보행자의 삶의 질을 높여준다는 것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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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덕수궁 돌담길 사괴석 해체 전 (우)보행자전용도로 사괴석이 해체 된 보차분리도로>
출처 : 오마이뉴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보차공존도로라는 개념이 부족했던 한국에서 이 거리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보행자가 우선시 되어야 하는 보차공존도로에서도 운전자의 보행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관광명소였던 덕수궁 돌담길은 관광버스의 잦은 출입으로 사괴석이 부서지기 일쑤였습니다. 이에 따른 보수  비용 문제와 원활한 관광버스의 출입을 명목으로 사괴석은 사라졌고, 덕수궁 돌담길은 다시 과거와 같은 보차분리 도로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지정된 시간에 차량을 통제하여 시간대별 보행자전용도로로 쓰고 있습니다. 보행자를 위한 거리를 조성하였다가 차량 위주의 길로 돌아간 덕수궁 돌담길이 여전히 걷고 싶은 거리인지 의문이 듭니다.
 
재개발’보다 ‘재생’의 길로
 물질만능주의적 사고는 도시와 인간의 삶을 더욱 빠르게 흘러가도록 재촉합니다. 그러나 편리성과 실용성만을 고려한 도시는 마치 기계와 같습니다. 재개발을 통한 도시의 성장이 진정한 도시의 승리일까요?  빠르게만 발전해온 도시를 시민의식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덕수궁 돌담길이 그 예입니다. 도시재생은 이와 반대로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의 속도를 늦추어 주는 것이 아닐까요. 덕수궁 돌담길에서 보행자도 차량도 천천히 움직였을 때 아름다웠던 것처럼 도시와 시민의식은 ‘재생’을 통해 천천히 함께 자라나야 더욱 깊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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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1.한국도시설계학회, 『도시설계의 이해』, 보성각, 2014
2.네이버지식백과 - 서울특별시 알기 쉬운 도시계획 용어 (http://terms.naver.com/list.nhn?cid=42151&categoryId=4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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